영춘권은 위험하다?
작성자
조영진
작성일
2014-09-02 12:43
조회
4630
영춘권은 위험하다?
아니, 치사오 센터의 영춘권이 위험하다.
사람이 변하는 운동, 영춘권
사람이 변하면 그가 중심인 세상도 변한다.
지난 토요일 수련 후,
오랜 만에 만난 친구와 생수에 치킨을 뜯으며 긴 수다를 떨었다. 그때 나눴던 내용의 일부를 정리해서 올리는데... 흠흠흠... 꽤 길다 ㅡ.ㅜ;;
1. 긍정적인 생각의 한계
수 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긍정적인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스포츠에서 하는 응원도, 전장에서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애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니까요.
하지만, 자기계발에 있어서 "긍정적인 생각"은 한계가 있습니다. 긍정적 사고를 하기 이전에 내가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게 함정입니다. 내가 부정적인 사람이면 한 번 긍정적 생각을 했더라도 종국에는 부정적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왜냐면 내가 부정적인 사람이라서 그렇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한 번 한 이후에 내가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부정적인 생각과 판단과 행동을 계속해서 하기때문에 처음의 긍정적인 생각이 결국은 부정적으로 진행이 되고 부정적으로 끝을 맺는 겁니다.
혹자는 의지의 나약함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싸이코싸이버네틱스의 저자 맥스웰 몰츠 박사는 단언합니다. 이건 절대 의지가 약하고 강한 문제가 아니라고. 그저 지금까지 내가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부정적인 내게는 "긍정적인 생각"이 정답이 아닌 오답이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건 나 답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내가,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내 정체성이 바뀌어야 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나를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꾸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종착지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 방법에 영춘권의 위험이, 아니 치사오센터의 영춘권이 위험한 이유가 있습니다.
2. 위험한 이유 : 내가 바뀌다.
영춘권 수련을 통해서도 비슷한 양상을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영춘권 수련을 통해서 적절함을 알아갑니다. 맞설 수 있으면 부수고 나아가고, 힘이 부족하면 물러나서 다른 해법을 찾고. 부수는 게 지나치면 그게 오히려 상대방이 공격해 들어오는 빌미를 제공하고, 방어가 지나치면 막는다는 의미가 무색하게 힘없이 무너져 공격 받습니다. 타격과 방어가 동시에 이뤄지는 영춘권 수련을 통해서 나아갈 때와 멈출 때를 알아가는 훈련을 합니다.
머리로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적절한 사람으로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수련을 합니다. 자유 치사오나 자유 만사오를 하다 보면 상대의 성향을 알 수 있습니다. 공격적인지, 방어적인지.
수련을 하다보면 바뀌어 갑니다. 각자의 적절함을 찾아갑니다. 방어적인 사람은 공격을 하기 시작합니다. 앞뒤 안 재고 공격만 하던 사람은 방어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 단계까지 오면 상대에 대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이 사람은 정말 나름의 적절함을 찾은 걸까, 아니면 적절함에 대한 화두를 지금 이 순간 붙들고 있기에 나오는 것일까? 그걸 알아 보려면 지칠 때까지 오래하던지, 아니면 강하게(?) 몰아 붙이면 됩니다. 둘 다 "적절해야지"라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이끄는 게 목적입니다.
그 상태에서도 나름의 적절함이 유지되고 있으면 그 사람의 성향 자체가 그 만큼 바뀐 겁니다. "나는 공격적인 사람이야"가 "나는 공격적이지만 방어도 신경을 쓰는 사람이야"로, "나는 방어적인 사람이야"가 "나는 방어적이지만 공격도 하는 사람이야"로 바뀐 겁니다. 내가, 나의 정체성이 바뀐 겁니다.
이게 영춘권의, 아니 치사오센터의 영춘권이 위험한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란 사람이, 나의 정체성이 바뀌는 겁니다.
3. 변화의 근간 : 자기 긍정
치사오 영춘권 센터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이 가르치는 선생님과 감정적으로 친밀함을 쌓곤 합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수련하시는 분들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편 들어주고, 같이 힘들게 한 대상을 욕(?)도 해주고.
이를 통해서 사람들은 "내가 잘 하고 있었구나. 내가 생각한 게 틀린 게 아니었구나"라고 자기 긍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각박한 현대 생활에서 바짝 긴장하고 있던 것들이 놓여지고 이완됩니다.
앞서 "싸이코싸이버네틱스"의 저자인 맥스웰 몰츠 박사가 사람이 바뀌지 못하는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싸이코 싸이버네틱스"에서 박사는 묻습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나는 이런 사람이야"는 어떻게 해서 형성이 되었는지 묻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든 대부분은 나의 의지로 만들어진 부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를 바꾸는데 필요한 것도 의지가 아닙니다. 충분히 릴랙스한 상태에서 내 모습에 대해 재구성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누구는 이를 명상이라고 표현하고, 누구는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표현하고, 누구는 공부라고 표현할테지요.
치사오 영춘권 센터는 수련이라고 표현합니다.
충분히 긴장이 이완된 릴랙스된 상황에서 꾸준한 수련을 통해 새로운 내모습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이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처음에 오시는 분들에게 쉬어가면서 하실 것을 권하지요.
이 부분이 치사오 영춘권 센터만의 독특하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게 왜 위험하냐구요?
4. 호사다마, 변했으니까 성공한다.
수련 전에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불만스러우면 불만스러운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 세계에서 만족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나름의 안정감은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긍정과 꾸준한 수련을 통해서 내가 달라지면 이전에 문제가 없던 내가 살던 세상에 조금씩 파문이 일기 시작합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테지만 대게는 인간관계 부터 뭔가 삐걱 댑니다. 이를 시작으로 "안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게 영춘권 수련, 아니 치사오 영춘권 센터의 영춘권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호사다마"라고 받아들이기를 제안합니다. 좋은 일이 있으니까, 아니면 좋은 일이 있으려고 나쁜 일이 발생한 거라고 받아들이기를 제안합니다. 내가 변했기 때문에 세상이 바뀐 내게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혹시 이런 상황이시라면 수련 전후를 비교하여 자신이 좋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 한 번 돌아보시기를 권합니다. 자신이 좋아졌는데 안 좋은 일이 발생한다면, 좋아지기 전 자신이 속했던 세상이 좋아진 지금의 자신에게 맞추어 변하는 과정에서 오는 재채기 같은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를 제안합니다.
혹자는 그럽니다. "성공 하더니 사람이 변했어"
하지만 저는 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변했으니까 성공했다"라고.
내가 좋게 바뀐 만큼 내 앞에는 더 좋은 세상이 펼쳐질 겁니다.
제가 오랜 만에 다시 영춘권을 찾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니, 치사오 센터의 영춘권이 위험하다.
사람이 변하는 운동, 영춘권
사람이 변하면 그가 중심인 세상도 변한다.
지난 토요일 수련 후,
오랜 만에 만난 친구와 생수에 치킨을 뜯으며 긴 수다를 떨었다. 그때 나눴던 내용의 일부를 정리해서 올리는데... 흠흠흠... 꽤 길다 ㅡ.ㅜ;;
1. 긍정적인 생각의 한계
수 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긍정적인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스포츠에서 하는 응원도, 전장에서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애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니까요.
하지만, 자기계발에 있어서 "긍정적인 생각"은 한계가 있습니다. 긍정적 사고를 하기 이전에 내가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게 함정입니다. 내가 부정적인 사람이면 한 번 긍정적 생각을 했더라도 종국에는 부정적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왜냐면 내가 부정적인 사람이라서 그렇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한 번 한 이후에 내가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부정적인 생각과 판단과 행동을 계속해서 하기때문에 처음의 긍정적인 생각이 결국은 부정적으로 진행이 되고 부정적으로 끝을 맺는 겁니다.
혹자는 의지의 나약함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싸이코싸이버네틱스의 저자 맥스웰 몰츠 박사는 단언합니다. 이건 절대 의지가 약하고 강한 문제가 아니라고. 그저 지금까지 내가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부정적인 내게는 "긍정적인 생각"이 정답이 아닌 오답이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건 나 답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내가,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내 정체성이 바뀌어야 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나를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꾸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종착지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 방법에 영춘권의 위험이, 아니 치사오센터의 영춘권이 위험한 이유가 있습니다.
2. 위험한 이유 : 내가 바뀌다.
영춘권 수련을 통해서도 비슷한 양상을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영춘권 수련을 통해서 적절함을 알아갑니다. 맞설 수 있으면 부수고 나아가고, 힘이 부족하면 물러나서 다른 해법을 찾고. 부수는 게 지나치면 그게 오히려 상대방이 공격해 들어오는 빌미를 제공하고, 방어가 지나치면 막는다는 의미가 무색하게 힘없이 무너져 공격 받습니다. 타격과 방어가 동시에 이뤄지는 영춘권 수련을 통해서 나아갈 때와 멈출 때를 알아가는 훈련을 합니다.
머리로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적절한 사람으로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수련을 합니다. 자유 치사오나 자유 만사오를 하다 보면 상대의 성향을 알 수 있습니다. 공격적인지, 방어적인지.
수련을 하다보면 바뀌어 갑니다. 각자의 적절함을 찾아갑니다. 방어적인 사람은 공격을 하기 시작합니다. 앞뒤 안 재고 공격만 하던 사람은 방어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 단계까지 오면 상대에 대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이 사람은 정말 나름의 적절함을 찾은 걸까, 아니면 적절함에 대한 화두를 지금 이 순간 붙들고 있기에 나오는 것일까? 그걸 알아 보려면 지칠 때까지 오래하던지, 아니면 강하게(?) 몰아 붙이면 됩니다. 둘 다 "적절해야지"라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이끄는 게 목적입니다.
그 상태에서도 나름의 적절함이 유지되고 있으면 그 사람의 성향 자체가 그 만큼 바뀐 겁니다. "나는 공격적인 사람이야"가 "나는 공격적이지만 방어도 신경을 쓰는 사람이야"로, "나는 방어적인 사람이야"가 "나는 방어적이지만 공격도 하는 사람이야"로 바뀐 겁니다. 내가, 나의 정체성이 바뀐 겁니다.
이게 영춘권의, 아니 치사오센터의 영춘권이 위험한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란 사람이, 나의 정체성이 바뀌는 겁니다.
3. 변화의 근간 : 자기 긍정
치사오 영춘권 센터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이 가르치는 선생님과 감정적으로 친밀함을 쌓곤 합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수련하시는 분들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편 들어주고, 같이 힘들게 한 대상을 욕(?)도 해주고.
이를 통해서 사람들은 "내가 잘 하고 있었구나. 내가 생각한 게 틀린 게 아니었구나"라고 자기 긍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각박한 현대 생활에서 바짝 긴장하고 있던 것들이 놓여지고 이완됩니다.
앞서 "싸이코싸이버네틱스"의 저자인 맥스웰 몰츠 박사가 사람이 바뀌지 못하는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싸이코 싸이버네틱스"에서 박사는 묻습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나는 이런 사람이야"는 어떻게 해서 형성이 되었는지 묻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든 대부분은 나의 의지로 만들어진 부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를 바꾸는데 필요한 것도 의지가 아닙니다. 충분히 릴랙스한 상태에서 내 모습에 대해 재구성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누구는 이를 명상이라고 표현하고, 누구는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표현하고, 누구는 공부라고 표현할테지요.
치사오 영춘권 센터는 수련이라고 표현합니다.
충분히 긴장이 이완된 릴랙스된 상황에서 꾸준한 수련을 통해 새로운 내모습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이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처음에 오시는 분들에게 쉬어가면서 하실 것을 권하지요.
이 부분이 치사오 영춘권 센터만의 독특하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게 왜 위험하냐구요?
4. 호사다마, 변했으니까 성공한다.
수련 전에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불만스러우면 불만스러운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 세계에서 만족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나름의 안정감은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긍정과 꾸준한 수련을 통해서 내가 달라지면 이전에 문제가 없던 내가 살던 세상에 조금씩 파문이 일기 시작합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테지만 대게는 인간관계 부터 뭔가 삐걱 댑니다. 이를 시작으로 "안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게 영춘권 수련, 아니 치사오 영춘권 센터의 영춘권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호사다마"라고 받아들이기를 제안합니다. 좋은 일이 있으니까, 아니면 좋은 일이 있으려고 나쁜 일이 발생한 거라고 받아들이기를 제안합니다. 내가 변했기 때문에 세상이 바뀐 내게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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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그럽니다. "성공 하더니 사람이 변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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