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꼰대인가

작성자
나다움
작성일
2019-11-23 00:37
조회
13651
나는 '꼰대'였나?

내 의견과 다른 의견을 공격으로 받아들이다.
취향의 문제는 시비의 문제인가?



1. 타이어 교체는 전문 업체에 맡기자는 말에 화가 났다.

아내가 올가을에 새로 발령을 받았다. 기존 출퇴근은 편도 15분 남짓이었는데 이제는 편도 1시간 남짓이다. 하루 왕복 출퇴근 거리가 130km에 이른다. 장 거리 출퇴근에 운전 간 안전이 걱정되어서 차를 바꿨다. 전기차 니로EV로 바꾸었는데 반 자율 주행이라고 불리는 스마트 크루즈 (드라이브 와이즈)와 후측방 경보, 차선 유지 보조 등 안전장치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마트크루즈에 고속도로 주행보조 HDA가 더하면 고속도로에서 운행이 많이 편하다. 악셀과 브레이크를 밟을 일이 거의 없고 핸들도 손만 살짝 얹어 놓고 있는 것으로 충분해 운전으로 인한 피로도가 많이 줄어든다. 새 부서로 옮긴 이후에 근무 시간이 늘었다. 야근도 많아지고 출장도 잦아지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부대끼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고. 장거리 출퇴근의 피로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다행히 전기차 니로EV는 아내가 출퇴근할 때 받는 피로를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하루는 아내가 퇴근을 하고 할 이야기가 있다고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곧 겨울이 오면 타이어를 윈터 타이어로 바꿀 텐데 이번에 새 차를 샀으니 타이어 전문 업체에 맡기고 싶다고.

난 화가 났다.

당연한 이야기에 화를 내니 아내도 많이 당황스러워한다. 난 흥분해서 고함도 지르고, 한참을 씩씩댔다. 나는 왜 이랬을까?



2. 타이어 직접 교환, 재미냐 돈이냐 안전이냐?

재작년부터 나는 자동차 타이어를 직접 갈았다. 이를 위해서 휠 4개 세트를 중고로 샀다. 기존 휠에는 겨울 타이어가, 새로 산 중고 휠에는 사계절 타이어를 장착했다. 휠 타이어만 겨울과 봄에 바꿔 끼운 지 2년이 되었다. 그냥 재미 삼아 타이어를 직접 바꿔보고 싶기도 했지만, 업체에서 무지막지한 파워를 가진 임팩드라이브로 사정없이 조이고 푸는 과정에 휠 볼트와 너트의 나사산이 망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돈이었다. 타이어를 한 번 갈아끼울 때마다 타이어 교환에 따른 공임과 타이어 보관비가 7만~10만원 정도 한다. 1년에 2차례 하니까 1년에 15만~20만원 정도 한다. 타이어 교환 주기를 주행거리나 제조일을 고려할 때 3~4년으로 잡으면 내가 직접 타이어를 갈고 보관하면 3~4년의 기간 동안 타이어 최소 한 세트에서 최대 두 세트 비용은 아낄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이 때문에 차를 들어 올리는 데 쓰는 작기도 하나 장만했고, 너트를 조일 때 쓰는 정해진 힘으로 조일 수 있는 토크렌치도 장만했다. 이제야 타이어 가는 것이 좀 익숙해졌다. 중고 휠 세트에는 타이어 공기압 측정 센서 TPMS가 없다. 중국산으로 외장형을 구매했는데 2년이 안돼서 배터리를 갈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배터리야 갈면 되는데, 이번에 윈터 타이어로 갈 때 기아 순정 TPMS를 사서 달 계획이었다. 다행히 니로EV와 휠 사이즈가 동일하다.



3. 상처 회복에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아내는 불안한 모양이다. 그럴 만한 게 올봄에 한 번 타이어 너트가 풀린 적이 있다. 다행히도 바퀴에서 끼릭끼릭 나는 큰소리에 놀란 아내가 바로 근처 휴게소로 들어가면서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마침 주말이라 견인차로 차를 실어 왔다. 내가 운전을 해보니 소리가 나는 쪽이 바퀴 같았다. 세우고 확인을 하니 너트가 손으로 풀릴 만큼 몇 개가 풀려 있었다. 뒤 바퀴 중 한 개가 그랬는데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다. 왜 풀렸는지는 모르겠다. 타이어를 갈 때 2번, 3번 확인했는데. 이때 아내는 많이 놀랐다. 반년이 지난 지금도 염려가 되었던 모양이다. 아내 입장에서는 당연한 의견 제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타이어를 직접 교체하겠다는 말을 나를 책망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까닭이다. 타이어를 갈기 위해서 내가 준비한 일련의 행동들이 모두 부정당한 것 같았다. 돈 좀 아껴보겠다고 구매한 여러 장비들을 앞으로 쓸 일이 없어지면서 그만큼 비용이 발생해버린 상황이다. 뭐, 2년 동안 4번을 직접 갈고 타이어도 창고에 직접 보관했으니까 장비 값은 뽑았다. 하지만...... 부정당한 느낌, 실패로 받아들여지는 이 상황이 나는 힘들었다. '효율' '경제성'을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나였다. 그리고 변명을 하자면 어릴 적부터 부모님에게 칭찬 대신에 내가 이룬 것들에 대한 '부정'을 당하고 자라온 터라 내 의견과 다른 것은 전부 나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실 결혼을 하고 나서 아내와 숱한 싸움을 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비슷한 상처가 있었던 아내와 나는 한 사람이 옳고 다른 한 사람이 틀려서가 아니라 취향이 다른 것을 두고 서로를 향한 공격이라 생각을 했다. 결혼하기 전에 '치약을 끝에서부터 눌러 짜는 것과 가운데서 눌러 짜는 것 때문에 싸운다'라는 이야기는 들으면서 '무슨 이 말도 안 되는 걸로 싸워' 속으로 피식 웃었더랬다. 실제 결혼을 하니 정말 이런 사소한 것들이 불씨가 되어 화약고를 터트리듯 싸운 적이 꽤 있었다.

이번에도 돌이켜보면 이게 가장 컸다.



4. 버리기 비우기 내려놓기

왜 난 내 의견과 다른 것을 나를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일까? 물론 이 부분은 10년 가까이 아내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부분으로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많이 개선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붙들고 놓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려운 점은 자각을 못 하고 있고, 자각을 했더라도 개선해야 한다는 데 까지는 의식이 미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아내와 크게 싸우고 며칠이 지난 뒤에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여전히 나와 의견이 다른 것을 나를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나를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내가 붙들고 있는 것 중에서 버려도 상관없는 것들을 여전히 붙들고 있었다고. 아마, 결혼하기 전에 아내가 짐 정리를 도와주면서 내가 버릴 엄두를 내지 못하던 많은 쓰레기를 버려준 그때처럼 나는 쓰레기는 아니지만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들을 붙들고 놓지 않으려고 아내에게 화를 내고 고함을 치고 있었다고.

https://blog.naver.com/nadaoom/220692624787
버리기 비우기 내려놓기



5. 취향의 차이가 시비의 문제인가?

예전에 오쇼 라즈니쉬의 글을 보면서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때로는 운 좋게 진리의 문을 열기도 한다. 다만 눈앞에 진리가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고 또 다른 문을 찾아 헤맨다.' 이런 내용의.

나를 화나게 만든 것은 '내 의견과 다른 것을 나를 틀렸다고 단정 짓는다'라고 받아들인 것이 시발점이었다. 이 일이 있기 며칠 전에 나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요즘 공정과 정의가 몇 달 동안 뉴스를 오르내리며 이슈가 되고 있는데, 때로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취향의 차이를 선악으로 구분 짓는 오류를 곧잘 범하고 있어. 직장에서 상급자가 하는 지적의 많은 부분은 상급자가 옳고 하급자가 틀려서가 아니라 상급자의 취향에 맞지 않는 것뿐이라는 것을 몰라. 즉, '꼰대'짓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지"

내가 '꼰대' 짓을 하고 있었다. 물론 변명을 하고 싶다. 이건 내 탓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나의 성취를 무시당해왔기 때문이라고. 나를 지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자기보호 기제의 하나라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를 받아들이고 모든 견해들에 열려있는 자세를 취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으나 머리로는 지식으로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다만 같은 잣대로 나를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고, 바라보고도 차마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6. 태극권, 이제야 힘을 하나 빼다.

아내가 퇴근한다는 톡을 받고 나는 데크로 나갔다. 진짜 오랜만에 태극권을 해본다. 요즘 운동을 안 해서 해야지 해야지 해도 막상 하면 흥이 안 나던 태극권이었다. 팔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서 경직된 것이 느껴진다. 이 느낌은 오래되었다, 즉 인지하고 있던 부분이다. 다만 이 경직이 태극권을 할 때 늘 듣던 '불필요한 힘'을 빼는 '송'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르지 못했다. 힘을 빼 본다. 태극권의 전반적인 느낌이 달라진다. 더 가벼워진다. 더 편안해진다.

재밌다.

거의 10년 만이다. 태극권을 하면서 이런 느낌을 받은 건. 익숙했던 팔을 경직시키는 듯한 힘을 빼니 손끝이 앞으로 살짝 뻗어 나간다. 어깨도 가벼이 살짝 내려가고 팔꿈치도 아래로 살며시 떨어진다. 이를 '침견추주'라고 태극권을 하는 데 있어 앞서 말한 '송'이란 개념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다. 나는 충분히 '침견추주'를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다.

10년 전, 결혼을 앞두고 이삿짐을 싸면서 내가 버리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아내가 대신 버려주었다. 아내의 이삿짐을 쌀 때는 내가 그 역할을 하기로 했는데 그럴 시간을 내지 못한 게 억울하기도 했다. 10년,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지나도록 나는 여전히 한 꺼풀 한 꺼풀 새로이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맥스웰 몰츠 박사의 '싸이코 싸이버네틱스'가 좋았지만 치열하게 자아상 재정립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까닭도 있고, 채우는 대신에 비운다고 착각한 채 분노와 화를 붙들고 있는 것에 여전히 익숙하기도 하고, 변명 같지만 내가 자각을 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이게 끝이 있는 작업일까라며 스스로를 위안해보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는 음..... 헤아리고 싶은 말머리가 몇 개 더 있다. '꼰대'와 '결단'의 구분이나 '비우는' 대신에 '채우는' 것에 대해서도. 특히 '비우는' 대신 '채우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조금 성장을 한 것 같고...... 음.....


새가 운다.
자각은 깨달음은
내 입장에서 풀어보면
변화의 시작에,
실마리를 찾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비슷한 주제로 계속해서 글을 쓰는 이유이다.
지금은 깨달았지만 내일은 또 까먹는.....
콜록콜록.....
새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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