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만에 촌경 익히기?> -4편
작성자
장량
작성일
2020-08-24 23:05
조회
2085
자 그렇다면 움직임 속에서 어떤 타이밍을 찾기 위해 태극권은 무슨 방법을 쓰는가?
상대와 나의 에너지를 섞어서 융화한다. 그러기 위해 상대에게 점착한다. 태극권의 용어로는 ‘점연점수粘連黏隨’다. ‘달라붙는다 잇는다 끈끈하게 따라간다’ 는 글자의 뜻을 가지고 있다. 점연점수가 대략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극권의 수련자 두 사람이 손을 맞대고 일정한 동작을 주고받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으실 것이다. 추수推手라고 하는 태극권의 연습법이다. 많은 추수 관련 동영상 중에서 오파태극권의 스승이신 마악량노사의 오래된 동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먼저 감상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아니 무슨 댄스동호회?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생각하는 무술의 절도 있는 동작도 아니고, 흔히 볼 수 있는 상대가 펑펑 날아가는 다이나믹한 추수 동영상도 아닌, 연로하신 노인 한 분과 중년의 여인이 두 팔을 맞대고 그저 물이 휘돌아가듯 둥글게, 맞댄 팔에 무리한 힘과 모자란 틈 없이 무난히 움직이고 있다. 한 사람이 밀고 들어가면 그만큼 받아서 되돌려주고, 한 사람이 움직이면 또 그대로 무리하지 않게 그 움직임에 응해주는, 무술인지 춤인지 경계조차 모호하다.
저 자료를 처음 봤을 때의 생경함에 나 역시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노사의 파격적인 발상과 자유로운 사고에 감탄하게 되었다. 마악량 노사는 끊임없이,
세상에 태극권이 아닌 게 어딨어, 춤이라고? 그러면 어때, 그냥 맞물려 흘러가면 되는 거야, 그냥 그렇게 맞물리면, 움직이는 곳곳에 음양이 섞이고, 그래서 태극인 거야 허허…
라고 얘기하고 계시더라. 그 얘기를 조금 더 형이하학적(!)으로 풀어 써보면 이러하다.
“이와 같이 상대와 나의 에너지를 맞물리는 연습을 통해 상대와 나의 에너지가 오고 가고 섞이고 융화된다. 마치 두 개의 분리된 몸이 하나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 몸(융화된 에너지)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마치 내 몸의 가려운 곳을 긁거나, 원하는 때 풀쩍 한걸음 내딛거나, 펴고 싶을 때 언제든 자기 팔다리를 뻗는 것과 동일하게 상대의 굳어 있는 작용점에 발경을 펼칠 수 있게 된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하는 정도의 수고로움으로 말이다. 허허…” 쯤이 되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가만히 보면 마악량 노사가 전체적인 움직임을 이끌어가고 있고, 같이 시연하는 여성은 그 움직임에 충실히 응해서 무리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편한 마음으로 저 자연스런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부드럽기만 한 움직임의 사이사이에, 사실은 매끈하지 않고 덜그덕거리는 순간들이 짧게, 불규칙하게,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잠깐씩 지나가는 것을 눈이 아니라 느낌으로 느낄 수 있다. 맞물려 움직일 작정을 한 상황에서도 의도치 않게 저런 순간들이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런 자연스런 맞물림이 몸에 익숙해지면 또한 의도적으로 매끈하지 않고 덜그럭거리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한쪽의 에너지가 상대의 에너지를 매끄럽게 받아내지 못하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이 전편에서 언급했던 ‘결정적 순간’이다. 앞서에서 본 동영상(발경의 비밀)에서 상대의 힘의 작용점들이 굳어서 튕겨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바로 그 순간이다. 맞물림을 체득하면 그 맞물림으로 인해 상대가 불편해하고 접촉한 힘의 작용점들이 역학적으로 배열되는 ‘결정적 순간’이 제 발로 찾아오게 된다. 아주 간단하다^^
하지만, 또한 간단하지 않은 것이, 이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이다’ 라고 인식한 순간 벌써 천 리는 멀리 지나갔다는 사실이다. 그 타이밍은 시간과 함께 움직이는 에너지와 공간의 동적인 과정 안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준비된 상대를 튕겨내는 연습이 아니라, 움직이고 변화하는 상대에게 그 역학적 에너지를 펼칠 수 있는 순간을 찾아내는 수련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댄스 동호회의 춤처럼 보이는 저 애매한(?) 시연 속에 사실은 이와 같은 웅대한(!)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
상대와 나의 에너지를 섞어서 융화한다. 그러기 위해 상대에게 점착한다. 태극권의 용어로는 ‘점연점수粘連黏隨’다. ‘달라붙는다 잇는다 끈끈하게 따라간다’ 는 글자의 뜻을 가지고 있다. 점연점수가 대략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극권의 수련자 두 사람이 손을 맞대고 일정한 동작을 주고받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으실 것이다. 추수推手라고 하는 태극권의 연습법이다. 많은 추수 관련 동영상 중에서 오파태극권의 스승이신 마악량노사의 오래된 동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먼저 감상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아니 무슨 댄스동호회?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생각하는 무술의 절도 있는 동작도 아니고, 흔히 볼 수 있는 상대가 펑펑 날아가는 다이나믹한 추수 동영상도 아닌, 연로하신 노인 한 분과 중년의 여인이 두 팔을 맞대고 그저 물이 휘돌아가듯 둥글게, 맞댄 팔에 무리한 힘과 모자란 틈 없이 무난히 움직이고 있다. 한 사람이 밀고 들어가면 그만큼 받아서 되돌려주고, 한 사람이 움직이면 또 그대로 무리하지 않게 그 움직임에 응해주는, 무술인지 춤인지 경계조차 모호하다.
저 자료를 처음 봤을 때의 생경함에 나 역시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노사의 파격적인 발상과 자유로운 사고에 감탄하게 되었다. 마악량 노사는 끊임없이,
세상에 태극권이 아닌 게 어딨어, 춤이라고? 그러면 어때, 그냥 맞물려 흘러가면 되는 거야, 그냥 그렇게 맞물리면, 움직이는 곳곳에 음양이 섞이고, 그래서 태극인 거야 허허…
라고 얘기하고 계시더라. 그 얘기를 조금 더 형이하학적(!)으로 풀어 써보면 이러하다.
“이와 같이 상대와 나의 에너지를 맞물리는 연습을 통해 상대와 나의 에너지가 오고 가고 섞이고 융화된다. 마치 두 개의 분리된 몸이 하나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 몸(융화된 에너지)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마치 내 몸의 가려운 곳을 긁거나, 원하는 때 풀쩍 한걸음 내딛거나, 펴고 싶을 때 언제든 자기 팔다리를 뻗는 것과 동일하게 상대의 굳어 있는 작용점에 발경을 펼칠 수 있게 된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하는 정도의 수고로움으로 말이다. 허허…” 쯤이 되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가만히 보면 마악량 노사가 전체적인 움직임을 이끌어가고 있고, 같이 시연하는 여성은 그 움직임에 충실히 응해서 무리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편한 마음으로 저 자연스런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부드럽기만 한 움직임의 사이사이에, 사실은 매끈하지 않고 덜그덕거리는 순간들이 짧게, 불규칙하게,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잠깐씩 지나가는 것을 눈이 아니라 느낌으로 느낄 수 있다. 맞물려 움직일 작정을 한 상황에서도 의도치 않게 저런 순간들이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런 자연스런 맞물림이 몸에 익숙해지면 또한 의도적으로 매끈하지 않고 덜그럭거리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한쪽의 에너지가 상대의 에너지를 매끄럽게 받아내지 못하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이 전편에서 언급했던 ‘결정적 순간’이다. 앞서에서 본 동영상(발경의 비밀)에서 상대의 힘의 작용점들이 굳어서 튕겨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바로 그 순간이다. 맞물림을 체득하면 그 맞물림으로 인해 상대가 불편해하고 접촉한 힘의 작용점들이 역학적으로 배열되는 ‘결정적 순간’이 제 발로 찾아오게 된다. 아주 간단하다^^
하지만, 또한 간단하지 않은 것이, 이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이다’ 라고 인식한 순간 벌써 천 리는 멀리 지나갔다는 사실이다. 그 타이밍은 시간과 함께 움직이는 에너지와 공간의 동적인 과정 안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준비된 상대를 튕겨내는 연습이 아니라, 움직이고 변화하는 상대에게 그 역학적 에너지를 펼칠 수 있는 순간을 찾아내는 수련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댄스 동호회의 춤처럼 보이는 저 애매한(?) 시연 속에 사실은 이와 같은 웅대한(!)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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