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만에 촌경 익히기?> -5편(완결)
작성자
장량
작성일
2020-09-01 23:19
조회
2327
전편에서 태극권의 수련자가 찾고자 하는 발경의 결정적 순간 혹은 타이밍은 ‘맞물림’을 통해 체득한다는 얘기를 했다. 태극이 은유하는 바,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이 맞물림이다. (이 부분에 대한 얘기는 <영덕 클럽>의 다른 회차에서 별도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첫 편의 치사오영춘권센터 관원들의 <3분만에 촌경 익히기?> 동영상과, 두 번째 편 <발경의 비밀> 동영상에서 공통의 지점은, 시연을 펼치는 사람이 아니라 받아주는 측에 있다. 즉 ‘굳건히 버텨라’ 라는 대목이다. 소위 원인치 펀치의 시연들에서 뒤로 나동그라지는 장면은 받아주는 사람이 튕겨 나가려고 쇼를 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튕겨 나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야 가능하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시연이 아닌 실제의 상대는 매 순간 튕겨 나가지 않으려고 혹은 타격에 저항하려고 부단히 버틴다. 동시에 의도적으로 혹은 우연히, 힘을 흘리고 받고 흩뜨린다. 늘 단단하지도 늘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단지 움직이고 살아 있으며 유동적이다. 따라서 저러한 퍼포먼스는 사실 극적인 시각적 효과를 의도한, 시연을 위한 시연쯤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저 극적인 장면을 만드는 연습 자체가 사실은 촌경이나 발경과는 하등의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이야기이다. 퍼포먼스는 퍼포먼스일 뿐, 딱 그만큼 감탄해 주면 되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모든 무술은 결국 저 굳건히 버티는 지점을 찾아내는 과정이고, 태극권과 같은 중국 전통의 무술은 저 지점을 ‘맞물림’을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처럼 맞물림을 통해 무술적인 목적을 찾으려는 방식이 태극권에서만 있는가?
한 가지 동영상을 더 감상할 차례다.
치사오다.
영춘권의 가장 중요한 연습법이다.
격투를 시작해야 할 일촉즉발의 순간에 갑자기, 자 이제 팔을 대고 돌립시다! 라고 시작하는 격투를 상상할 수 있나? 따라서 저 휘휘 돌리는 치사오처럼 이루어지는 실제의 격투는 단연코 없다.
그럼 왜? 도대체 왜 저 쓸데없고(?)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과정을 연습하는 데 그 많은 시간을 들일까. 지나온 글들에서 짐작하셨을 것이다. 마악량 노사가 손 맞대고 움직이는 추수(댄스!)가 추구하는 목적과 동일한 목적이 바로 영춘권의 치사오라고 나는 생각한다. 몇 주 동안 결국은 치사오에 관한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글을 시작했다.
물론 태극권과 영춘권은 전혀 다른 무술이다. 따라서, 맞물림의 결과로 획득된 태극권의 발경의 시점과 영춘권의 타격의 시점은 미묘하게 같지 않다. 발경은 더 전면적으로 상대의 에너지를 이끌고 끌어들여서 상대와 융화하고, 그 적극적인 맞물림 자체가 발경의 조건을 이룬다면, 영춘권의 치사오에서는 상대와의 맞물림이 어그러지거나 깨졌을 때가 공격/방어의 시점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에너지를 이끌고 끌어들여 상대와 융화(맞물림)하는 과정까지가 공통이라면, 한쪽은 그 맞물림을 통해서, 한쪽은 그 맞물림의 어긋남을 통해서 각각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치사오는 저 맞물림을 통해서 상대와 나의 에너지가 융화하고 그 속에서 주도권을 찾아나가며, 맞물림이 어그러지는 부분을 감각으로 찾아나가는 연습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상대를 타격하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오로지 때리기 위해서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게 아니라, 맞물림을 체득하기 위해 좀 더 여유롭게 너그럽게 수련자의 의식을 풀어헤치고 느슨하게 하는 연습이다.
각각의 무술은 고유의 방법을 가지고 무술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향해 매진한다.
충분히 현대의 다양한 무술들은 그러한 목적을 충족시키면서 발전해 왔고 발전해 갈 것이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리가 익숙한 관점과는 다른 각도에서 이러한 길을 추구해 나가는 길도 있어 왔으며 그 또한 나름의 발전을 해 나갈 것이다. 훨씬 마이너하겠지만, 이치를 깨닫는 과정에 쾌재를 부르며, 삶 속에 팽팽한 우리의 의식을 느슨하게 풀어헤치는 과정을 즐기는, 영점 몇 프로의 덕후들로 이 길 또한 끝없이 발전해 나갈 것이다.
그래서 항상 변방의 무술일 우리 치사오영춘권센터의 영덕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화이팅!
<이 시리즈의 결론 및 Tip>
1. 3분만에 익힐 수 있는 촌경 따위는 없다! (물론 촌경이 없다는 건 아니다)
2. 다른 무술에서 내가 하는 무술을 비난하면, 적어도 세 번쯤은 왜 그럴까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3. 어떤 무술 시범을 유튜브로 볼 때, 시범을 펼치는 사람보다 먼저, 그 시범에 당하는 사람을 보자. 멋지게 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시범은 그냥 재밌는 퍼포먼스구나 생각하고 진지하지 않게 즐기자.
4. 어두운 시대에 덕후 타이틀도 잘사는 방법 중 하나다.
<끝>
첫 편의 치사오영춘권센터 관원들의 <3분만에 촌경 익히기?> 동영상과, 두 번째 편 <발경의 비밀> 동영상에서 공통의 지점은, 시연을 펼치는 사람이 아니라 받아주는 측에 있다. 즉 ‘굳건히 버텨라’ 라는 대목이다. 소위 원인치 펀치의 시연들에서 뒤로 나동그라지는 장면은 받아주는 사람이 튕겨 나가려고 쇼를 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튕겨 나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야 가능하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시연이 아닌 실제의 상대는 매 순간 튕겨 나가지 않으려고 혹은 타격에 저항하려고 부단히 버틴다. 동시에 의도적으로 혹은 우연히, 힘을 흘리고 받고 흩뜨린다. 늘 단단하지도 늘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단지 움직이고 살아 있으며 유동적이다. 따라서 저러한 퍼포먼스는 사실 극적인 시각적 효과를 의도한, 시연을 위한 시연쯤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저 극적인 장면을 만드는 연습 자체가 사실은 촌경이나 발경과는 하등의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이야기이다. 퍼포먼스는 퍼포먼스일 뿐, 딱 그만큼 감탄해 주면 되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모든 무술은 결국 저 굳건히 버티는 지점을 찾아내는 과정이고, 태극권과 같은 중국 전통의 무술은 저 지점을 ‘맞물림’을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처럼 맞물림을 통해 무술적인 목적을 찾으려는 방식이 태극권에서만 있는가?
한 가지 동영상을 더 감상할 차례다.
치사오다.
영춘권의 가장 중요한 연습법이다.
격투를 시작해야 할 일촉즉발의 순간에 갑자기, 자 이제 팔을 대고 돌립시다! 라고 시작하는 격투를 상상할 수 있나? 따라서 저 휘휘 돌리는 치사오처럼 이루어지는 실제의 격투는 단연코 없다.
그럼 왜? 도대체 왜 저 쓸데없고(?)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과정을 연습하는 데 그 많은 시간을 들일까. 지나온 글들에서 짐작하셨을 것이다. 마악량 노사가 손 맞대고 움직이는 추수(댄스!)가 추구하는 목적과 동일한 목적이 바로 영춘권의 치사오라고 나는 생각한다. 몇 주 동안 결국은 치사오에 관한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글을 시작했다.
물론 태극권과 영춘권은 전혀 다른 무술이다. 따라서, 맞물림의 결과로 획득된 태극권의 발경의 시점과 영춘권의 타격의 시점은 미묘하게 같지 않다. 발경은 더 전면적으로 상대의 에너지를 이끌고 끌어들여서 상대와 융화하고, 그 적극적인 맞물림 자체가 발경의 조건을 이룬다면, 영춘권의 치사오에서는 상대와의 맞물림이 어그러지거나 깨졌을 때가 공격/방어의 시점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에너지를 이끌고 끌어들여 상대와 융화(맞물림)하는 과정까지가 공통이라면, 한쪽은 그 맞물림을 통해서, 한쪽은 그 맞물림의 어긋남을 통해서 각각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치사오는 저 맞물림을 통해서 상대와 나의 에너지가 융화하고 그 속에서 주도권을 찾아나가며, 맞물림이 어그러지는 부분을 감각으로 찾아나가는 연습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상대를 타격하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오로지 때리기 위해서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게 아니라, 맞물림을 체득하기 위해 좀 더 여유롭게 너그럽게 수련자의 의식을 풀어헤치고 느슨하게 하는 연습이다.
각각의 무술은 고유의 방법을 가지고 무술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향해 매진한다.
충분히 현대의 다양한 무술들은 그러한 목적을 충족시키면서 발전해 왔고 발전해 갈 것이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리가 익숙한 관점과는 다른 각도에서 이러한 길을 추구해 나가는 길도 있어 왔으며 그 또한 나름의 발전을 해 나갈 것이다. 훨씬 마이너하겠지만, 이치를 깨닫는 과정에 쾌재를 부르며, 삶 속에 팽팽한 우리의 의식을 느슨하게 풀어헤치는 과정을 즐기는, 영점 몇 프로의 덕후들로 이 길 또한 끝없이 발전해 나갈 것이다.
그래서 항상 변방의 무술일 우리 치사오영춘권센터의 영덕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화이팅!
<이 시리즈의 결론 및 Tip>
1. 3분만에 익힐 수 있는 촌경 따위는 없다! (물론 촌경이 없다는 건 아니다)
2. 다른 무술에서 내가 하는 무술을 비난하면, 적어도 세 번쯤은 왜 그럴까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3. 어떤 무술 시범을 유튜브로 볼 때, 시범을 펼치는 사람보다 먼저, 그 시범에 당하는 사람을 보자. 멋지게 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시범은 그냥 재밌는 퍼포먼스구나 생각하고 진지하지 않게 즐기자.
4. 어두운 시대에 덕후 타이틀도 잘사는 방법 중 하나다.
<끝>
치사오영춘권센터